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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독백

자향7 2024. 4. 5. 21:33

 
황혼의 독백 / 자향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이야기하고 싶어 지는 날이 있다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들을 희미하게나마 바라보는
너무 긴 날이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하면서
삶으로부터 비켜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 까지가
인생이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그대로 시인 하고픈
아니 시인할 수밖에 없는 노년엔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이곳저곳 관절이 무너지는 소릴 들어야 하는
삭풍같은 계절을 지나게 된다
두 발로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은
남유달리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맛집 앞에 줄지어선 긴 줄을 보면
보기에도 배부르고 흐뭇하지만
인생 끝자락에서 펼쳐질
긴 생명줄은 저으기 망설여지는
부질없는 걸음일 것을 알기 때문에
매사에 체념을 익혀가며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동기도 부여받을 수 있지 않고
마른꽃처럼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무정함이랄까?
오로지 건강 하나에만 매달린 가여운 애석함이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마음속에 회한으로 매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늙어가며 공감이 교류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행복하리라
아니 등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그대가 있다면 
두런두런 이야기하리라
 
야멸찬 삶에 대해 보따리를 풀어놓고
오랜 세월
희로애락, 만고풍상이  빚어낸
잔물결 같은 조각들을 어루만지며
석양위를 뉘엿거리는 발걸음은
어쩌면 차분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것은 아닐런지?

돌아보면 어떤 날은 영롱한 물방울처럼 찬란했었고
어떤 날은 가슴아린 슬픈 날도 었었다고
검은 먹구름이 밀려올 때는
한없이 무서웠고
가슴 떨며 울며 지새운 밤도
많았노라고....
 
긴 여로에 펼쳐지는 인생이야기 일랑
모두들 한없을 진데
말하지 않아도 깊은 눈빛이 이야기하듯
바라만 보아도 그 마음을 헤아리리라
그 어떤 고통도 가슴아린 사연들도
견딜 수 있는 꾸덕살배긴 노년은!
묵묵히......
흘러만 가는 물처럼
말없는 달관의 침묵을!
누구도 말하지 않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임이
이 얼마나 후련한 독백 이련가
 
풀기 빳빳한 모시적삼처럼
아직은 그나마 풀기가 남아있기에
내가나를 부축할 수 있지 않은가?

위장 속에서 휘장을 찢고
진솔하게 드러내며
고뇌로 통하는 삶의 길몫을  지키며 
의연히 걸어가는 그대의 뒷모습은
그래도 아름다우리.